덥다는 말을 하기도 지칠만큼 뜨거운 여름입니다. 이 무더위를 다들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건강에는 무리가 없는지 궁금합니다. 처서와 입추가 이어지는 8월인만큼 얼른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 날씨가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찜통 속 만두로 만들어버리는 7월의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는 사육곰 문제를 알리고 화천의 곰들을 돌보느라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동물을 돌보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국내 생츄어리의 필요성과 그 의미를 고민해보았고 웅담산업이 사양화되며 방치된 사육곰 문제를 해양 쓰레기 문제와 엮어 논의해보기도 했습니다. 7월에는 돌봄활동가 인건비 모금을 위한 해피빈 모금함도 열었으니 많은 관심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이 뉴스레터가 숨 가쁜 여러분들의 일상 속 물 한 모금 같은 여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이들이 그저 무탈하기만을 바라는 요즈음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땀 흘리는 분들 모두에게 무탈하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길 바랍니다.
* p.s
반디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을 위한 애칭으로 반달가슴곰 + 버디(Buddy)를 합친 단어
💌 월간(月間)화천 - 7월
무더위 속의 7월입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쏟아지는 탓에 일과를 마치고 나면 기진맥진한 낡은 꼴이 되어 숙소로 돌아가는 하루하루의 연속입니다. 어제도 덥고 오늘도 더운 여름날이지만 이번 7월은 우리에게 특별한 달이었습니다. 화천의 상근 돌봄을 시작한 지 1주년이 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곰들을 찾아가 맛있는 과일과 채소를 먹이고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사육장을 청소하던 돌봄에서 한 발짝 아니 열 발자국쯤 더 나아가 곰들의 일상에 돌봄이 채워진 지 1년이 되었음은 곰들에게도 인간에게도 그 의미가 꽤 큽니다.
화천 농장의 곰도 사람도 환경도 어리둥절한 두 명이 만나 곰을 돌보겠다고 땀을 흘려대던 지난해 7월이 기억납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바쁜데 곰숲 공사까지 한창이던 때라 더더욱 바쁘고 고된 여름이었습니다. 사육장 청소하랴 곰들 밥 챙겨주랴 공사 현장을 확인하랴 정신 없이 농장을 돌아다니던 기억과 오전 일과를 마치고 겨우 한숨 돌리려 하면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아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 구석 종이상자 위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쪽잠을 자곤 했던 추억이라고 하기엔 고통스러운 기억도 남아있구요. 새 학기 첫 날처럼 뻘쭘하고 데면데면하게 곰들을 마주했던 풋풋한 추억도 떠오릅니다. 돌봄초기에는 어제 보고 오늘 또 봐도 그저 까맣고 커다랗게만 보이는 곰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는 것부터가 제게 주어진 임무였습니다. U1,L3과 같은 개체번호로 불렸던 곰이 이제는 유일, 라미와 같은 고유한 이름을 갖게 된 변화에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상근 돌봄이 시작한 지 1년, 곰들은 외형도 행동도 1년 전과는 확연한 변화를 보입니다. 기다란 체구에 비해 살이 붙지 않던 우투리는 100kg을 넘기며 자기 몸에 맞는 적당한 체형을 찾았고 사육장 안을 바삐 돌던 정형행동 탓인지 가끔씩 피투성이가 되었던 봄바의 방엔 더 이상 핏자국이 남지 않습니다. 밥에 대한 조급함 때문인지 사람만 보면 입을 벌리며 사육장 안을 돌던 알코르는 이젠 고무대야 안에 가만히 앉아 물놀이를 즐기며 사람을 바라볼 줄 아는 곰이 되었습니다. 시멘트 바닥 위 곰들의 발소리만 고요히 울리던 농장의 적막이 사료가 든 어구공을 던지는 쿵쿵 소리와 고무대야 안에서 참방거리는 물놀이 소리, 곰숲의 흙바닥을 거니는 소리로 채워졌습니다. 사람 세 명이 분주히 흘려대는 땀만으로 열 마리 넘는 곰들의 일상이, 삶이 변했음은 신기하고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한 일이기도 합니다.
변화는 곰들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돌봄활동가는 둘에서 셋이 되었습니다. 화천 농장에는 화장실과 샤워실이 생겼고 냉장고와 에어컨이 있는 사무실도 생겼습니다. 돌봄활동가들도 부쩍 자랐습니다. 몸짓과 소리로 들려주는 곰들의 언어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배가 고플 땐 어떤 반응인지 불안할 땐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곰들 한 마리 한 마리의 식성과 장난감 취향도 알게 되었습니다. 얼핏 찍힌 사진만 보고도 턱 밑에 흰 반달무늬가 있으면 푸실, 속눈썹이 길면 칠롱, 미간이 넓으면 미남이라는 것도 척척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일 년 동안 두 마리의 곰들을 떠나보내고 두 마리의 곰을 맞이하면서 우리에게 작별이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맞이해야 할 만남 또한 여전히 남아있음을 배웠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곰들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해주어, 돌봄활동가들이 조금씩 성장할 수 있게 해주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활동이 지속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습니다. 곰들에게 돌봄이 주어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힘은 많은 분이 보내주시는 관심과 후원입니다. 모양과 형태가 바뀔지라도 내년 7월에도 곰들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 흘리는 땀은 지금보다 더 많은 곰을 위한 것이기를, 더 많은 동료와 함께 흘릴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기본소득당 위원회 어스링스( @earthlings.kr)에서 귀한 자리를 만들어주어 화천에서 곰들을 돌보며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를 전하는 이야기 손님으로 참석하였습니다. '동물을 돌보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라운드 테이블은 돼지를 돌보는 '새벽이 생츄어리'( @dawnsanctuarykr) , 소를 돌보는 '달뜨는 보금자리( @newmoon.sanctuary) 의 돌봄 활동가들과 함께했습니다. 동물 돌봄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 돌보는 이들이 가지는 현장에서의 고민, 동물을 돌보며 느끼는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 주고 받는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바다 환경문제 전문 출판사인 한바랄 함께 ‘버릴 수 없는, 버려지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두 단체가 직접 현장을 다니며 기록한 사진과 영상을 가지고 우리가 버린 것들을 마주했습니다. 해양쓰레기와 사육곰은 전혀 다른 존재 같아 보이지만, 결국 가치가 사라져서 버려진 존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버릴 수 있는 걸까요? 버린다고 해서 그것들이 정말로 사라지는 걸까요? 버려졌지만 살아남은 곰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과정은 의미 있었습니다. 결국 해양쓰레기도, 사육곰도 버려 둔 채 알아서 사라지기 바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슨 말이지 싶으시겠지만, 화천의 곰보금자리에는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활동가들은 참다 참다 농장주가 사시는 집에 “죄송합니다아~화장실 좀 쓰겠습니다아~”를 외치고 들어가거나,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마을회관 화장실을 쓰곤 했습니다. 이번에 드디어 돌봄이 시작된 지 딱 2년 만에 화장실을 설치했습니다. 곰과 매일 부대끼는 활동가들에게는 말 그대로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은 일입니다.